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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o 리뷰

탁월한 사유의 시선 _ 최진석

by koon-i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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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표지
탁월한 사유의 시선 표지

 

 

30p. ‘철학적 시선을 갖는다’는 의미.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이야말로 나와 사회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킬 수 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목의 높이만큼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법이다.

 

34p. 사유의 활동 혹은 사유의 높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철학하는 목적은 철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철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온 철학의 수입은 능동적이거나 주체적이라기보다 종속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54p. 어떤 시도도 실패로만 마무리되는 법은 없다.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성공을 부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동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경험된 동력은 실패의 암울한 풍경 속에서도 꿈꾸는 자들을 더 심층적이고 새로운 곳으로 인도한다. 문제는 꿈을 꾸지 않는 일이다. 시도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시도라도 감행해야만 한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75p.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속적인 삶을 사는 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거나 효과적으로 사회를 관리하지 못한다.

출처 입력

83p. 자기 운명의 통제권을 자기가 가지지 못하면 종속적이고, 가지면 독립적이다. 통제의 결과가 성공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실패와 성공의 판 자체를 자기가 주도했느냐 상대가 주도했느냐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154p. 보통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일의 가능성 여부를 먼저 따지려 한다. 그런데 그것을 따질 때 사용하는 논리나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 이미 있는 것들인가? 아니면 지금은 없지만 다가올 것들인가? 우리는 분명 이미 있는 것들을 사용한다. 이미 있는 논리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따지거나 분석하면 결과가 정확히 나오겠는가? 현재의 틀로 미래를 재단하며 미래가 제대로 열리겠는가? 꿈을 꾸는 사람이 현재의 문법에 갇혀 있으면 꿈은 항상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꿈꾸는 일을 멈춰버리는 얌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안전을 추구하기만 하고, 낙오되지 않으려고만 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꿈은 불가능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나야 진정한 꿈일 가능성이 크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꿈이다. 가능해 보이는 것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괜찮은 계획이다. … 무모함을 감당할 배짱이 없이는 꿈을 꿀 수 없다. 결국은 용기다. 꿈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앞에 있는 것은 기존의 익숙한 문법으로 해석될 리 없다. 그 꿈이 이루어지고 형성될 새 문법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

 

 

157p. 내가 한 인간으로 잘 살고 있는지, 독립적 주체로 제대로 서 있는지, 누군가의 대행자가 아니라 ‘나’로 살고 있는지,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는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높이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187p. 관찰의 능력은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나온다. 호기심이 큰 사람은 관찰을 하고, 호기심이 작은 사람은 하지 못한다. 관찰을 유지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집요함이고 몰입이다. 인생의 승패는 자신을 이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여 진실하게 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요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아주 높은 단계다.

 

247p.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한다. ‘살아간다’는 말은 ‘직’이라고 하는 하나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현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직’은 자신의 ‘업’이 된다. ‘직’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고, ‘업’은 사명 혹은 자아실현을 의미한다. 직업의 출현이다. 직업이라는 말은 자신이 찾은 그 역할을 통해 자기를 완성해감을 의미한다. ‘직’은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직’과 ‘업’은 일체다. 이 말은 자신과 ‘직’이 일체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때 자신은 자신으로 살아 있다. 그 직업 안에서 자신은 행복하고 충족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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